인천에 있는 이발점에 대한 광고가 『만세보』 (1907. 3. 21)에 실려 있다. 인천 소재 이발점의 독자적 광고가 아니라 서울 이발점과의 공동 광고이다. 인천 조계에 위치하고 있던 종리이발점은 ‘맛사-지法구리무' 라는 ‘美顔術’뿐 아니라 ‘衛生婦人이 洗髮' 을 해주던 곳이었다. 물론 화장품은 '米國에셔 輸入한것' 이기에 '毛髮의 光라을 生’ 한다며 광고를 하는 것을 보건대 요즘의 풍경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발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는데 ‘이발사시험제'를 통해야 했다. 이발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험을 거쳐 자격을 얻어야 했지만 특히 조선인은 시험에 응시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제물포청년회에서 '아직 理髮試驗에 人格되지 못한 當업자들을 모아 강습하기로한(『동아일보』, 1924. 2. 19)’ 경우를 통해서 익히 짐작 할 수 있다.

인천 최초의 미용사는 누구일까. 어디에도 제대로 남은 기록은 없으나 『인천석금』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인천 최초의 미용 기술을 연마하여 미장원의 원조로 등장했던 미용사 심명숙 여사는 인천 갑부 심능덕 씨의 귀여운 따님이고, 현 평화공사 심의균 씨의 누님이다. 이분은 인천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소문난 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