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최초의 학생 조직은 1911년경에 결성된 경인기차통학생 모임인 한용단을 그 기원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행이 시작된 시기는 대략 1910년 무렵 부터이다. 이 무렵 인천의 인구는 3만 명이 넘었는데 보통학교 이상인 학교가 인천상업학교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여건과 경인 간의 기차 개통으로 불과 50분 거리의 서울로 진학이 용이했을 뿐 아니라 학생용 ‘파스' 라고 부르던 전기통학권의 가격도 1개월 1원 50전, 3개월 3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거기에 높은 교육열이 기차 통학을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서 1883년 인천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의 도래와 더불어 각지에서 모여든 객주, 상인 등 수완이 좋고 학식과 견문이 넓은 사람 들만이 부를 쌓고 명성을 얻는 상황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1세대들이 자신들의 부를 물려줄 2세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도 수도 서울의 신식 학교를 선택했다. 

아무튼 3·1 만세 운동 이후 민족 해방 의식 고취와 더불어 한용단의 출발을 알리는 신문 기사가 나올 정도로 청년 운동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가졌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