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 생활에서 멀어져 간 고무신에 대해 대부분이 한말 법부대신을 지낸 이하영이 1919년 서울에 설립했다는 대륙고무를 최초의 생산처로 기록한다. 물론 이하영의 첫 제품은 순종 임금이 신었다는데 그것은 1922년의 일이다. 그밖에도 1921년 김성수의 중앙상공주식회사, 고중희의 반도고무공업소, 1922년 이후 김연수가 만들었다는 별표 고무신 등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형 고무신을 창조해 낸 원조는 분명히 인천일 것이다. 그리고 고무신이 탄생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견본 역할을 했던 것 역시 인천에서 발명된 경제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 우리나라에 가죽 구두가 널리 보급되면서 인천 경동에 삼성태라는 양화점이 문을 연다. 그러나 당시의 구두는 한 켤레 값이 무려 쌀 두세 가마와 맞먹는 엄청난 고가품이었다. 여기서 삼성태의 주인 이성원이 착안한 것이 누구나 신을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짚신 대용 신발이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바닥은 가죽, 등 쪽은 우단이나 천막 천을 댄 오늘날의 남자 고무신 형태의 경제화였는데 한복 버선발에도 잘 어울리고 신고 벗는 데도 아주 편리한, 이름 그대로 매우 실용적인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