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인천출장소가 설치됐는데, 이것이 인천 창고 영업의 효시이다. 이후 1912년 한성공동창고가 천일은행을 합병하고 조선상업은행으로 개칭해서 인천출장소가 조선상업은행 인천지점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는 일반 은행 업무는 종전대로 하면서 창고업도 겸했다. 

1918년 10월 갑문과 독이 완성되어 내외출입선박이 증가함에 따라 창고 영업이 활황을 이루었다. 예컨대 1919년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창업한 인천창고주식회사는 개업한 지 2개월 만에 창업비용을 모두 상환했을 정도였다. 

인천의 창고업은 나날이 '신기록을 깨는’ 상황이었을 정도로 활황을 이루었는데 『매일신보』 (1915. 4. 23)의 "近來의 新記錄을 破함 - 氣候가 春節에 入하며 暖氣가 益加하야 河海가 崩氷하고 舟船의 便利를 得함으로 僻地及沿岸各也로부터 穀物의 廻送이 容易하게 되얏슴....” 라는 기사를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