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사』에는 1903년 경성의 수의사가 1개월에 2번 출장을 와서 우유 검사를 했는데 이것이 인천에서의 공식 우유 검사의 시초였다고 하고 있다.
개항 이후 인천에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했고 또 외국 선박의 출입이 잦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우유 생산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일면을 추측케 하는 『매일신보』 (1913. 7. 18)의 기사를 인용해 본다.
“인천에서는 매년 1월부터 6월에 지至하기까지 반개 년 간 우유 착취량을 문한즉 착취소 4개소와 유우 정수 5백9 두요 착취량 94석 5두, 2승 9합인데 1합에 평균 7전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