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여관영업단속규칙이 발포되었으나 그 내용과 일자는 불명하다. 다만 『개항 후 인천 풍경』에 당시 인천의 여관들이 매우 성업중이었던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이 보인다.
“대불호텔이 양인과 일인 귀빈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었으나 늘어나는 일인 여객을 위한 일본식 숙박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진여관(관동), 화옥여관(중앙동), 천강여관(관동), 국옥여관(북성동) 등이 생겼다.”
“미두장 주변에는 고객, 중매점원, 건달 등 많은 한국인이 북적거리게 되었다. 이 사람들이 숙박업, 외식업, 유흥업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와 주택 수요까지도 늘려 놓았다. 주막과 보행객주밖에 없던 거리에 일본어인 여관이란 이름을 딴 본격적인 숙박업소가 등장했다. 용강여관(용동), 경인여관(용동), 개풍여관(내동), 연안여관(내동) 등이 있었고, 축현역 앞과 선창가에는 여인숙도 여러 곳 생겼다. 아마 여관이란 단어는 인천이 창안한 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