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거족적인 전개에 힘입어 국·내외 각지에서는 독립 운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민족운동의 최고지도부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해 민족운동 세력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초기에는 각지에서 여러개의 임시정부가 선포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발표한 곳은 7군데 였는데, 이 가운데 조선민국임시정부 ·고려공화국과 간도임시정부와 신한민국정부는 그 주체가 불분명한 채 전단으로 발표된 '전단정부' 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서울의 한성임시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정부,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은 해당 지역의 민족운동가를 중심으로 수립된 것이어서 이후 통합논의를 거쳐 단일한 임시정부로 수렴되었다. 이 가운데 한성임시정부의 수립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항 중의 하나가 인천 만국공원에서 열린 13도 대표자회의라 할 수 있다. 한성임시정부는 3월 초 이교헌 · 윤이병 · 윤용주 · 최현구 · 이용규 · 김규 등이 이규갑에게 임시정부의 수립을 제의하면서 그 수립이 구체화되기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각계의 대표들이 1919년 4월 2일 인천 만국 공원에서 13도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임시정부를 수립, 선포할 것을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