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일본과 체결한 「朝日修好條規」에서 양국은 부산을 포함해 3개 항구를 20개월 이내에 개항할 것과 조선의 해도를 일본이 작성하는 것 등을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1877년 하나부사의 조선방문을 계기로 해도측량이 본격화 되면서 조선정부 내에서 인천 부평의 방비문제가 대두되었다. 그것은 인천과 부평이 강화 못지않은 보장중지이자 거리상 도성에 이르는 최단 거리의 경로라는 점, 일본이 인천 부평로를 파악하고 있는 점등을 의식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고종 15년(1878) 8월 27일 어영대장 신정희를 책임자로 하여 인천과 부평지역에 새로이 진을 설치하는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7월 1일 두 곳의 진사와 포대를 완성하고 그 명칭을 각각 화도진과 연희진으로 정하였다. 또한 각 군영의 훈련관 중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각 진의 별장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화도진과 연희진이 해문의 요충임을 감안하여 부근 1개면을 소속케하고 독진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