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함께 인천에는 구미 각국의 외교 사절, 선교사, 여행객들이 입항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목적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인천에 도착하면 서둘러 서울로 출발을 강행했다. 그러나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교통편이라고는 고작해야 조랑말이나 가마였고 아니면 본인 스스로가 도보로 나서는 것이 전부였다. 하루 종일 8시간을 걸어야 하는 도보는 만만한 것이 아닌 데다가 가마나 조랑말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배의 도착 시간 여하에 따라 인천에서 하루를 묵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당일 서울행이 어려운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 시설의 필요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특히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근대적 숙박 시설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호텔이 생기게 되는데 그 첫 호텔이 1888년 인천 중앙동에 세워진 대불호텔이다. 이 호텔은 1902년 서울 중구 정동의 손탁호텔보다도 몇 년 앞서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