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인천객주회가 결성되고 부산, 원산 등지에 객주회가 결성되면서 이들이 상행위를 독점하게 되자 정부는 도량형의 통일과 상거래상의 부정을 방지할 목적으로 객주 조합을 통합하여 균평사라는 단일 조직을 설립, 운영한다.
조선정부는 인천항에 균평사 본사를 두고 부산과 원산에 지사를 두어 각 항의 모든 상거래에 대하여 두형 등을 조사 통일케 하고 그 대가로 상인들로부터 일정액의 구문을 징수하여 균평사 운영 경비를 충당토록 하는 한편 정부에 상납도 하였으나 외국 상인들과 영사들의 집요한 항의로 이 제도 역시 폐지되고 말았다.
도량형이 인천과 경성에서 시범으로 실시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1911년 상반기까지도 여전히 도량형법이 정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