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독립된 언론기관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넓은 식자층이 있어야 하고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개항 이후에도 충분한 여건이 형성되기까지 한동안 인천지역에는 이렇다 할 지방언론기관이 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언론의 공백기에 인천 개항장의 일본인들은 신문을 방행하여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였고, 나아가 일제의 한국 침략 정책을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890년 1월 28일 『인천경성격주상보』라는 신문이 제물상보사에서 발행된다. 

이것이 인천에서의 신문 사업의 효시이다. 이 신문은 해외에서 일본어판으로 발행된 첫 신문이며 인천 신문사에서 제일 앞선다. 이 신문은 『조선순보』 및 『조선신보』의 전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