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 22일, 인천 내리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하와이 이민 121명이 이민선 켄카이호로 인천항을 떠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이민의 첫 장을 연 순간이었다. 1902년 하와이 사탕수수재배인협회의 비숍Charis R. Bishop 회장이 조선을 방문하여 정부와 이민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당시 하와이는 노동 인력이 부족해서 임금이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주한 미국공사로 있던 알렌은 1902년 3월 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사탕수수 재배자협회와 한인 노동자의 이민 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고 서울로 돌아와 자신을 신임하는 고종에게 이러한 사정을 보고하고, 적극적으로 이민을 권고했다. 

하와이 노동 이민 정책이 결정되고 조선정부는 수민원을 설립하여 해외 이민과 기타 여행 등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고 그 책임자로 민영환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이민 희망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데쉴러 David W. Desshler에게 노동자 모집과 파송의 일을 위임하였다. 데쉴러는 당시 동양광산회사의 인천 주재 항만 사원으로 있었는데, 하와이 노동 이민 모집을 대행하게 된 데에는 미국 공사 알렌의 소개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