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가을, 일본인 고난이 중앙동에 인천활자소를 설립하여 활판 인쇄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인천은 물론 한국 최초의 활판 인쇄업 기록으로 남는다. 인천항이 개항장으로서 서구, 개화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 기능을 했던 만큼 인쇄의 필요성과 수입은 당연했을 것이다. 특히 인천은 주요 무역항으로서 상공인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인쇄의 수요가 대두되었을 것이다.
인천활자소는 사업 번창으로 많은 이익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인쇄소의 주주는 9명 모두가 일본인이었다.
인천 한국인 거주지의 유일했던 활판인쇄소는 고급 학용품을 팔던 내동의 문방구점 이림상회가 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20년 후반 이종윤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익힌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용동 마루터기에 선영사라는 전문 인쇄소를 차리게 된다. 앞에 말한 이림상회에서는 1932년 2월 15일 『강도지』를 인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