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가 본고장 영국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직수입된 곳이 인천이라는 것은 널리 정설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수입되었다기 보다는 축구 시합이 최초로 열렸던 곳이라는게 타당하다.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 Flying Fish호가 제물포에 입항했을 때, 수병들이 잠시 상륙하여 자기들끼리 축구 시합을 벌였다는 것이다.
정식 시합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축구 시합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 영국 수병들은 축구가 끝나 배로 돌아가면서 공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주고 갔다고 하는데 이 공이 또한 한국에 전해진 최초의 축구공이며, 이때 공을 찬 한국 어린이들이 최초의 서양 축구공을 찬 한국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축구 전래설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문헌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실제로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이들 영국 수병들이 웃터골까지 올라와 시합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추측일 듯싶다. 이해 5월에 한영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개항이 된 것도 아닌 시점의 우리나라 정세와 분위기를 따져 볼때 해안에서 떨어진 웃터골에까지 올라와 외국군인들이 축구 시합을 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불어 당시 웃터골은 다만 응봉산 골짜기 분지에 불과했고, 이곳이 정지되어 운동장 구실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1년 10월 1일부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