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의 손에 의해 최초로 기록된 인천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언제 어떻게 해서 그런 기록이 남게 되었을까. 서해 5도는 어장으로서의 중요성도 크지만 옹진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요충지로서도 일찍부터 서구열강의 주목을 받아 왔다.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서세동점의 시기에 특히 서해 5도와 옹진 반도 일대를 중시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던 해군 장교 홀이 수많은 임무를 띠고 백령도에 상륙한 사실이 그러한 영국의 의중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홀은 『조선서해 탐사기 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에 서해 5도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