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인천에는 향토관 (구, 세창양행 사택) 과 일본인 수집가들이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었다. 해방 후 인천지역의 문화인사들은 일본인 소유 문화재의 반출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를 수장 · 전시할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천시립박물관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초대 인천시립박물 관장 이경성이었는데, 그는 우현 고유섭의 영향을 받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27세의 미학도였다. 이경성은 1945년 9월 미군정청 교화국장 최승만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을 계기로 인천 미군정의 훔펠 중위로부터 만국공원 향토관에 시립박물관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정식 발령을 받은 이경성은 만국공원의 구 향토관 건물을 보수하는 동시에 수장할 유물 확보에 착수하였다. 우선 구 향토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을 기본으로 하여 국립박물관에서 19점, 민속박물관에서 60점을 임대하였다. 아울러 박물관건립을 적극 지지한 훔펠중위의 후원으로 세관창고에 압류되어 있던 유물을 다수 확보하는 동시에 부평의 과거 일본 조병창에 있던 불상과 범종 등을 찾아 수장 하였다. 장석구와 같은 독지가가 유물을 기부하고 기금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개관 직전에는 모두 364점의 유물을 수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개관준비가 완료된 1946년 4월 1일 인천시립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