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두취인소는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에 개설되었다. 미두취인소는 일제가 한반도 내 미곡 시장 장악을 위해 제멋대로 설립한 수탈 기관이다. 인천에 진출한 일본 상인들은 한국산 미곡의 대 일본 수출이 격증하면서 인천항을 통한 미곡의 대외 거래와 정미업을 장악하게 되고 곧이어 한반도 내 쌀 유통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상인들의 유통 시장 진출은 초기에는 큰 벽에 부딪혔다. 대일 수출 미곡의 조달을 한국인 객주에 의존해 온 데다 인천항 객주조합, 신상회사, 근업소 등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상인들은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일찍부터 미두취인소 설립에 대해 대단한 애착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 또한 일반 무역상과 일본을 제외한 외국인 상사들의 반대 여론으로 번번이 저지되고 말았다. 끈질긴 일본인 미곡상 14명은 인천일본인상업회의소의 지원을 받아 1896년 4월 1일 마침내 미두취인소의 설립 허가를 획득하였는데, 그것도 우리 정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인천항에 있었던 일본영사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