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의 연혁을 갖는 한국의 화교사회는 1883년 인천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884년 인천의 청국조계지 설정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화교는 산둥지방 출신 이 전체 화교의 90% 이상이어서 이들이 한국 화교사회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 첫 발을 디딘 중국 화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산둥지방 출신이 아니라 임오군란(1882) 당시 청나라 군인을 쫓아 온 중국 남방 출신 상인들이었다.
당시 청국 정부의 비호를 받은 광둥廣東과 저장浙江성 등 남방 南方출신 40여 명의 군역 상인(군대 또는 군인을 상대로 장사를하는 상인)이 청국 군인과 함께 인천에 도착한 것이 화교가 한국에 진출한 시초이다. 1883년 인천개항 당시 인천에는 총 59명의 화상이 있었는데, 그 중 9명은 청국 영사관에서 일했으며 33명은 정식허가를 받은 상인, 나머지 17명은 무허가 상인이었다. 이듬해인 1884년 화상은 모두 205명으로 늘어났다. 이미 인천에 자리를 잡은 일본인과 상권을 다투기 위해 청국이 상인을 대규모로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