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에서 외국 상인과 직접 거래하는 상인은 객주라고 불리는 중개업자였다. 객주는 주로 물자의 집산지에서 도매상을 경영하면서 숙박과 창고 및 대금업 등을 겸했던 상인으로 조선후기 이래 상품 유통을 담당하던 주체였다. 개항장의 객주들은 그 지방에서 성장한 유력 상인이 점포를 차린 경우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하여 개점한 경우도 있으며, 유력한 상인이 개항장의 객주를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천항의 경우는 외국의 거대 상사들이 상륙한 개항장인데다가 상품의 유입과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하였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토착상인, 즉 객주들의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배려하였다. 인천항의 객주들이 만든 최초의 조직적인 모임은 인천객주회로서, 1885년 조직된 이 회는 외국상인, 특히 자본과 수송에 있어서 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일본 상인들의 경제 침투에 맞서서 조직된 단체였다. 그렇지만 이 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객주들은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자본을 갖지 못하였고 거의 반관반민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종래의 전통 상인 단체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조직이나 기능에 있어 아직 근대적 상인단체의 체제를 갖추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인천항 신상협회는 1897년 1월 인천에서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객주단체였다. 서상집 · 서상빈 · 박명규 등이 발기인이 되고 50여 명의 인천항 객주가 참여하여 결성된 이 단체는 장정을 갖춘 근대적인 상인단체로서, 인천 지역의 관료 및 명사들이 고루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