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한때 인심이 각박하다는 뜻도 담긴 짜다는 별명을 듣고 있던 만큼 소금으로 유명했다. 1910년 후반부터 60년대에 이르는 약 반 세기 동안 인천은 김장소금, 간장소금, 고운소금 등 모든 소금의 산지로 전국에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인천의 특산 명물 하면 언제나 소금이 첫머리를 장식하였으나 이제는 사정이 많이 변했다. 지금은 인천에서 한줌의 소금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천은 근대식 천일염 기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염전을 축조한 곳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약 50년간 인천 관내의 염전이 우리나라의 연간 총 소금 소비량의 절반을 생산했을 뿐 아니라, 1920년을 전후해서 약 20년간 중국 산동성 천일염의 수입항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천일염을 정제한 새 하얀 고운소금을 만드는 재염공장이 인천에 집중 되어 거의 전국의 수요를 충당했다." 이상의 내용은 신태범의 『먹는재미 사는재미』에 나오는 인천 소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천 소금을 유명하게 한 주안염전은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주안에 1정보 가량의 천일염전을 시험적으로 축조했다. 그해 9월 23일에는 조정에서 이완용 등 여러 관리들이 주안 염전을 시찰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주안염전은 3단계에 걸쳐 규모가 확장됐다. 제1기(1908~1911)에 26만4천평, 제2기(1917 ~ 1918)에 37만2천평을 증축함에 따라 염전이 모두 63만6천평에 이르렀다. 제3기(1921)에는 남동염전 90만평과 1925년 3월 군자염전 1백72만5천평을 만든다. 1932년 주안염전 총면적 3백26 만2천2백평이었다. 군자와 남동에서 생산된 것은 바닷길을 통해 인천으로 배로 실어나르고, 주안염전에서 만든 소금은 주안역전창고로 옮겨 주문량에 따라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