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같은 책을 두 권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다 보니 책꽂이 어딘가에 있는 줄을 모르고 또 사는 바람에 빚어지는 일이다.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경우가 좀 다르다. 오래 전에 구입해 놓았지만 2017년 상반기 한국 문학사상 처음으로 300쇄를 돌파해 기념으로 한 권 더 샀다.
국내 소설 중 손꼽히게 많이 읽힌 《난쏘공》은 1970년대 인천의 노동자 가족 이야기다. 자동차 공장 일이 고되어 잠을 자면서도 코피를 쏟아야 하는 노동자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한 달 월세 1만5000원 쪽방에 사는 가족의 가계부 내역이 고스란히 나온다. 읽다가 책장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 대목이 있다. 앞집 아이 교통사고 문병 230원, 길 잃은 할머니 140원, 불우이웃돕기 150원. 520원을 이웃돕기에 쓴 것이다. 두통약 100원, 치통약 120원을 써야 할 정도로 몸까지 불편한 사람이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흔쾌히 주머니를 터는 모습은 당시 우리 사회의 일반적 풍경이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30~40년 전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가계부를 쓰던 《난쏘공》 속 가족은 엄마와 삼남매, 네 식구다. 죽어라 일해서 버는 삼남매의 한 달 수입 총액은 8만231원이었다. 보험료 등을 빼면 엄마가 손에 쥐고 살림할 수 있는 돈은 6만2351원이다. 당시 4인 가족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주머니를 털어 차비를 댔다. 자신이 불우이웃인 그들이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을 돕겠다며 기꺼운 마음으로 성금도 내고 행복해 했다.
《난쏘공》은 1978년 6월 초판 1쇄를 출간한 뒤 1996년 6월 100쇄, 2005년 11월 200쇄를 찍었으며, 2017년 4월 300쇄를 출간했다. 우리 문학작품 중 300쇄를 출간한 책은 《난쏘공》 이외에는 아직 없다고 한다.
《난쏘공》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기계도시 은강'은 영락없는 인천이다. 인천에서는 1883년 제물포항 개항과 함께 본격적인 부두 노동이 시작되었다. 그 뒤 항만 주변에 각종 공장이 들어서면서 산업도시로 자리잡았고 전국의 노동자들이 밀려들었다. 그 속에는 돈벌이에만 급급한, 노동자들의 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자본가들이 넘쳐났다. 점심시간 15분에 졸음을 쫓기 위해 바늘로 팔다리를 찔러가며 야간작업에 투입되어야 했던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취업의 상징도시도 인천이었다.
온갖 분야의 공장들이 들어선 복합 공장지대였지만, 한국 최고라며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판유리 공장도 인천을 떠난 지 오래다. 많은 공장들이 중국이나 베트남 등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했고, 땅이나 건물 임대료가 저렴한 타 지방으로 떠났다.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신도시 개발사업이 이어지면서 거기 들어설 아파트단지에 공장들이 밀려나는 형국이다. 그래도 여전히 인천은 수도권 최대 공단지대이자 항만과 공항을 낀 물류도시다.
《난쏘공》의 주요 무대인 인천 동구와 중구 일대를 걷다 보면 1970~80년대 그 활기차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음을 대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이제는 그야말로 구도심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인천은 여전히 《난쏘공》의 도시다. 노동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버거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은강의 인구가 81만 명이었는데 지금 인천의 인구는 300만 명에 달한다. 50년도 안 되어 도시 규모가 4배 가까이 커졌다. 송도와 영종, 청라로 대표되는 경제자유구역의 도시개발이 인구 증가를 주도했다. 그만큼 인천의 빛과 그림자도 선명해졌다. 지금은 인천의 새로운 《난쏘공》을 써야 할 때다.